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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선천적인 장애로 다른 외모를 지녔지만 사랑스러운 소년의 이야기

by 아이뽀끼 2022. 10. 30.

1. 원더 줄거리

 주인공인 어기 폴먼은 안면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마인크래프트와 과학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어기의 부모는 어기가 10살이 되자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기는 처음 가보는 학교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과학 수업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학교에 다녀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망의 첫 등교일 예상했듯이 어기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교한 어기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엄마와 다정한 아빠에게 위로받고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어기의 누나인 비아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눈 친구인 미란다는 갑작스럽게 비아를 멀리했습니다. 그리고 비아는 우연히 얘기를 나누게 된 저스틴을 따라 연극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어기는 잭을 집에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하지만 핼러윈 날 가면을 쓰고 학교에 갔다가 잭이 친구들에게 어기랑 억지로 놀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어기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잭도 교장 선생님의 부탁 때문에 어기를 챙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기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는데 친구들 앞에서 실수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상처받은 어기는 잭을 멀리했습니다. 잭은 어기의 주변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줄리안은 자신보다 어기와 친하게 지내는 잭에게 화가 났고, 막말했습니다. 이에 잭은 어기를 변호했고, 둘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어기와 잭은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다시 가까워졌습니다.

 

 비아는 연극 공연의 주연 역할 오디션을 봤습니다. 오디션 결과, 주인공은 미란다가 맡게 되었고 비아는 주연의 대타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실 미란다는 가족처럼 지내던 비아의 모든 것이 부러웠습니다. 비아의 가족 모습을 자기 가족인 것처럼 주변인에게 말했고, 이에 마음이 불편해진 미란다가 비아를 멀리한 것이었습니다.

 동아리 발표회 날 미란다는 비아의 가족이 모두 공연을 보러 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비아에게 주연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비아는 진심을 담아 연기했고, 관객들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어기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단체로 놀러 갔습니다. 우연히 숲속을 걷게 되었고 불량소년들이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어기는 용기 있게 그들에게 맞서 싸웠고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늘 자신을 괴롭혀 오던 친구들과 마음을 나눈 어기는 호수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감정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졸업을 맞이했습니다. 어기는 졸업식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모범이 된 학생에게 수여하는 헨리 워드 비처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메달의 주인공은 어기였습니다.

 

 

2. 원더를 보고 느낀점

 안면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밝은 성격의 어기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면의 장애가 내면의 장애로 이어지는 것을 자주 보았고, 주변에서 외면은 건강한데 내면의 장애를 가진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외면의 장애를 갖고 있던 어기가 내면의 건강함을 갖게 된 데는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어기의 감정에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른들 말입니다. 주변에 건강한 어른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면만은 건강한 어기의 모습으로 자라날 수 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의 중반부에 아픈 동생이 우선적일 수 밖에 없는 어기의 엄마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나인 비아도 머리로는 아픈 동생이 우선 일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엄마가 자신에게만 집중해주기를 바라는 평범한 여고생입니다. 비아라는 인물이 장애가 있는  형제, 자매가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갈등과 마음을 잘 표현해준 것 같습니다.

 

 줄리안이 어기를 놀리다가 징계받게 되었을 때 교장 선생님이 줄리안에게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어기의 외모는 바꿀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요?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닌 바꿀 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올바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